고려인 이주 160주년 기념 연해주 문화교류 행사에 침뜸부스 동참














고려인 이주 160주년 기념 연해주 문화교류 행사에 침뜸부스 동참
블라디보스톡 옆 공항이 있는 도시 아르툠 K침뜸 체험부스
2024년 11월 21일 아침 블라디보스톡 옆 공항이 있는 도시 아르툠시 문화회관. 고려인 이주 160주년 기념 연헤주 문화교류 행사가 열리는 아르툠시 문화회관 앞 광장을 지나는데 러시아인 청년이 다가오더니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했다.
전날(11.20) 허리와 어깨 통증이 있다며 행사장 내에 설치된 허임침뜸 체험부스로 찾아와 K침뜸 봉사자 선생에게 침을 맞은 사람이었다. 러시아말이 안 되고, 그는 한국말을 모르니 표정과 몸짓으로 대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청년은 팔을 들어 올려 굽혔다 폈다 하는 동작을 반복하며 아프지 않다는 표현을 하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다음날 예술단공연 후 문화회관 안에서 이름도 모르는 그 러시아인 청년을 다시 만났다.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하여 나란히 사진 한 컷을 찍어 뒀다.
고려인/한인 이주 160주년 기념 연해주 문화교류 행사는 2024년11월18일 K-디아스포라 예술전부터 시작하고, 20일부터 21일까지는 K-문화교류행사로 무대공연과 체험부스 운영을 진행했다.
(사)허임기념사업회 손중양 이사장과 질경이우리옷 이기연 대표는 패션쇼 공연과 침뜸체험부스 운영을 협력을 할 수 있도록 한국에서 정효재 선생, 임정미 선생 2인이 4인조가 동행했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연길로 가서, 거기서 버스로 국경을 넘었다.
지도로만 보던 한반도 지도의 최북단을 따라가다 블라디보스톡을 향했다. 아르툠까지는 7시간이 걸렸다.
19일 늦은 밤 행사장에 도착하여 부스를 꾸렸다.
이기연 대표는 우리옷 패션쇼를 위해 그동안 시나리오를 짜고, 등장인물의 몸 치수를 확인하여 옷을 맞추는 등으로 밤새워 준비하고, 현지 모델들이 입을 옷을 대형가방 4개에다 채워 넣어 무겁게 준비해 왔다.
고려인/한인 이주 160주년 기념 연해주 문화 교류 행사
주요행사
K-디아스포라예술전, K-문화교류마당, 고려인예술단공연, 우리옷(한복)패션쇼
일정:2024년11월18일 ~ 11월22일
장소:아르촘문화회관
주최| (사)연해주동북아평화기금,고려인비즈니스클럽<원동>
후원| 아르촘시청,고려인/한인이주1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사)동북아평화연대
11월20일 오후 2시 문화교류 행사 기념공연을 했다. 개막공연은 우리옷패션쇼를 하고, 민족무예 결련택견 멋진 시범으로 이어졌다.
허임침뜸 부스에는 K침뜸체험 봉사를 위해 한국에서 간 정효재 선생과 임정미 선생,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에서 7~8년 전부터 침술원을 하는 박금수 선생과 1995년 경부터 사할린에서 농사를 지으며 침뜸봉사활동을 해 온 손병덕 선생이 합류했다.
K침뜸 체험봉사를 하던 임정미 선생과 정효재 선생은 20일 오후 2시로 예정된 행사개막을 앞두고는 이기연 대표를 도와 우리옷 패션쇼 준비에 동참했다. 옷을 챙겨 걸고, 다림질을 하고, 패션쇼에 참여할 모델에게 우리옷을 골라 입히고, 이기연 대표의 연출에 따라 모델들이 무대로 나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까지 도왔다.
아르툠 시민인 고려인 2세 할머니도 우리옷 다림질에 나섰다. 이 할머니는 예쁜 우리옷을 입고 모델로도 참여하여 아름다운 공연을 펼쳤다.
침뜸부스에 봉사자로 참여한 손병덕 선생 부부도 패션쇼 모델이 되었고, 박금수 선생과 손중양 이사장도 우리옷 모델로 참여했다.
결련택견협회도 한국 택견을 알리는 부스를 마련하고, 도기연 회장과 황인무 사범은 무대에서 20일과 21일 양일에 걸쳐 택견 시범을 보였다.
개막식이 끝나자 침뜸부스에는 K침뜸을 체험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이었다. 현지 고려인들만이 아니라 러시아인들도 큰 관심을 가지고 찾아와 침뜸체험을 했다.
올해 90세이신 강 니꼴라이(러시아 동북아평화기금의 설립자) 선생도 한국 침뜸을 맞아 보기 위해 부스를 들렀다. 최근 중풍이 왔었는데 그는 스스로 침을 놓아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그는 젊었을 때 우스리스크에 침놓는 고려인 노인이 계셔서 가서 침을 맞고, 그때부터 침을 공부하여 침을 놓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며, 주머니에서 침을 꺼내 보여주셨다.
고려인들이 가는 곳에는 어디나 민족의 생명건강문화인 침구술이 함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2일 낮에는 문화교류행사 및 미술전시회에 참여한 일행 모두는 블라디보스톡으로 가서, 160년 전 고려인들이 이주하여 정착한 개척리와 고려인들이 이동하여 살던 마을도 둘러보고, 독립운동가들의 유허지도 찾아 참배했다.
23일에는 침뜸&우리옷팀 4인이 고려인들이 많이 사는 우스리스크를 방문했다. 김현동 동북아평화연대 이사장의 안내로 이상설 유허비와 발해 성곽 등도 둘러봤다. 그리고 우스리스크 시내에 있는 고려인문화센터를 둘러보고, 민족학교도 방문하여 김 발레리아 교장 선생님과 차담도 나눴다. 또 우정마을의 회관이면서 동북아평화기금 사무실도 있는 '솔빈'문화센터를 방문했다.
한편 11월22일 저녁에는 아르툠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우스리스크 아리랑 가무단과 러시아 라두가 무용단의 합동이 있었다.
우스리스크의 아리랑가극단과 함께 펼치는 고려인 이주 160주년 공연은 디아스포라 고려인들의 한과 기상도 공감할 수 있고, 여러 민족이 어울려 사는 러시아의 문화적 저력도 함께 느낄 수 있게 된다.
한국 국내에도 이 순회공연단이 와서 전주와 서울에서 공연을 했다. 2024년 12월11일에는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우스리스크 아리랑 가무단과 러시아 라두가 무용단 합동 공연이 펼쳐졌다.
한국도 급속도로 다문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라 여러 민족의 문화를 예술적으로 승화하여 공존할 수 있는 방안 모색에도 도움 될 듯하다.
러시아는 다민족 국가이다. 러시아에는 약 200여 민족이 공존 하는데, 이 중 대부분은 백인이지만 러시아가 유럽에서 아시아로 영토 확장한 나라이므로 아시아 쪽 소수민족도 존재한다.
▷러시아민속무용단 ‘라두가’
라두가란 러시아말로 ‘무지개’라는 뜻으로 1987년 1월 연해주 발쇼이 까뮌 시 <즈뵤즈다>공장의 문화관에서 창설되었다.
무용단은 공장의 노동자들과 도시의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무용단의 공연물들은 러시아와 세계의 민속춤들이다.
매우 빠른 준비과정을 거쳐 이미 1987년 7월에 연해주의 도시와 마을 등에서 순회공연을 개최했으며 첫해의 공연활동으로 무용단은 도시와 지역, 주 더 나아가서 전체 소비에트 예술자치활동 경연에서 최고로 상을 많이 수여한 예술단체가 됐다. 참가단원의 수 만해도 100명을 넘어서고 있다.
1990년 3월 28일 무용단에게 ‘인민(민중)’이라는 영광의 이름이 부여되었고 이 무렵에 무용단의 공연물은 50개 이상이 됐다. 주로 독무, 주제무, 가무극들이며 대중적인 춤들은 무용단의 창작활동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춤, 러시아춤, 몰도바춤, 폴란드춤, 발틱연안춤, 벨라루시야춤 등 100명 이상이 참여한 몇 개의 가무극들은 큰 대중명절 때 연해주 경기장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무용단은 17년 동안 ‘쁘리모리스끼 따빠뚜히’, ‘즈뵤즈다 /504;바카’, ‘쩨르쁘씨호라’, ‘민족 문화 축제’, ‘카작 문화 축제’ 등 주의 각종 콩쿠르에서 수상을 했으며 국제 민속춤 페스티발 ‘포크 댄스’에서도 수상을 했다. 국제 페스티벌 ‘태평양 평화의 날’에서도 2번 수상하기도 했다.
연해주의 여러 도시에서 순회공연도 활발하다. 블라디보스톡, 아르툠, 나홋까, 우수리스크, 빠르티잔스크, 포기노, 슬라뱐까 등 연해주 여러 지역에서 콘서트를 열었고, 이르쿠츠크 시에서도 순회공연을 했다.
12명의 단원이 전문 무용 교육을 받아 자신들의 무용단을 만들었고, 연해주와 하바로브스크 주의 여러 도시에서 활동하고 있다.
<재외동포신문 정재수 기자. 입력 2006.09.07 17:12>
[우스리스크 아리랑 가무단]은 고려인 민족학교의 학생으로 이루어져 있다.
2019년에 김 발레리아는 '고려인 민족학교'를 세웠다. 김발레리아 교장은 러시아 고려인 3세.
고려인 4세, 5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글과 우리 전통예술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우수리스크에 있는 2층 건물을 빌려 200명의 학생을 모아 방과후 교실로 출발했다. 연해주 정부로부터 민족교육기관으로 인정을 받았으나 재정 지원은 없어 김 발레리아 혼자 힘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가야 했다. 학교가 세워진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며 재외동포청과 인천시교육청, 한국의 시민사회가 조금씩 지원해 주고 있으나 임대료, 교사 월급, 교재·교구비는 늘 부족했다.
하필이면 민족학교가 문을 열고 얼마 안 돼 코로나가 터지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이어져 학교를 둘러싼 사정은 나빠져만 갔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일주일에 세 번 한 시간 반씩 운영되는 한글수업 참여자에게 1500루블(2만 6천 원)의 수업료를 받으나 턱없이 모자랄 뿐이다.
김 발레리는 고모의 뜻을 존중해 개교 때부터 북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합류했으나 학교의 사정과 고모의 어깨가 점점 무거워지고 있으니 그의 마음 또한 무겁긴 마찬가지다.
- 어떤 계기로 민족학교에서 북을 가르치는 선생이 된 건&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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