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의청을 설치하라! -1644년 인조22년 침뜸역사신문 사설


침의청을 설치하라!
우리나라 의술을 대표할 침뜸전문서인 침구경험방이 드디어 출판됐다. 침의들 중에서 으뜸으로 추앙받고 있는 침의(鍼醫) 허 임(許任)이 일생동안 보고 들은 것을 궁리하여 손으로 시험해 본 의술을 정리하여 한권의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이 책은 조선 사 람의 임상을 바탕으로 편찬한 조선의 의술서이다.
지난 1613년에 출간한 동의보감에도 침구처방이 병증별 치료 방법 가운데 소개되어 있고, 마지막권인 침구편(鍼灸篇)에 침뜸 의학에 필수적인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동의보감 은 의학경전의 재구성을 통한 집대성의 의미가 큰 책이다. 그 만 큼 나라에서 많은 지원을 하였고, 명성도 높다.
이번에 나온 침구경험방은 또 다른 의미에서 동의보감에 결 코 뒤지지 않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조선의 침뜸의학이 독자적 으로 자리를 잡은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의 학은 대부분 중국의 의학경전에 의존해, 중국의서를 그대로 수 입해서 쓰거나 재구성해서 엮은 것이었다.
허임의 침구경험방은 그렇지 않다. 실제 우리나라 의료현장에 서 직접 임상을 하며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집필한 책이다. 우 리 의학계는 의학경전을 교조적으로 신봉하는 풍토가 없지 않 았다. 의학(醫學)이라는 학문은 의술(醫術)이 되어서 의료현장에 서 쓰인다. 의학이 의술로 되기 위해서는 정성을 다하여 온 몸으 로 익혀야 한다. 이치를 궁구하고 그 원리를 터득하고, 심신을 바쳐서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진정한 의(醫)가 실 현이 되고, 의술도 향상이 된다. 침뜸의학은 침의들에 의해서 의 술이 되어 현실에 적용이 되는 것이다.
허임은 침구경험방 서문에서“감히 스스로를 옛사람의 저술 에 견주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생동안 고심한 것을 차마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책 내용이 자신의 평생에 걸친 임상이라 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는 고통을 겪는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일생동안 고심한 것이다.
어릴 때 부모님의 병 때문에 의원집에서 일하며 의술을 터득 한 허임은 20대에 임진왜란의 현장에서 수많은 백성들의 고통 을 침과 뜸으로 덜었다. 그는 그 때 이미 의술이 뛰어나 이름을 떨쳤고, 내의원 침의로 천거되어 선조와 광해군 그리고 지금 인 조까지 3대에 걸쳐 대궐을 드나든 우리시대 제일의 명의이다. 그런데도 허임은 늘 백성들 가운데서 인술을 베풀려고 했다. 틈 만 나면 전국의 각 지방을 다니며 아픈 사람을 고쳤다. 우리는 그의 인술자로서의 정신을 새겨야 할 것이다.
한편 중국 의서를 베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독창적인 침구전문서가 나온 데는 우선 침구전문업종의 정착이라는 의료 제도사적인 배경이 있었다. 세종 때 만들어진 침구전문업종이 성종 이후 제대로 정착되어 침구의원들의 의술이 더욱 발전하고 있었다. 침의(鍼醫)가 제도권 내에서 직업으로 자리를 잡고, 백성 들 사이에서도‘침쟁이’가‘침구의원’으로 인정되어 침구분야 가 전문영역으로 정착, 침뜸의술에 큰 진전이 있었던 것이다.
침구경험방을 간행한 것은 임금께서 만백성을 건강하게 살도 록 하려는 뜻을 받든 것이라고 이경석은 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영의정 명으로 관찰사까지 동원하여 국가적인 사업으로 침구경 험방을 인쇄해 낸 것이다. 그만큼 허임의 의술이 백성들을 위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땅히 세상이 공유하여 널리 전하여야 할 것이며 없애거나 함부로 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미 침과 뜸은 백성들의 생활의술로 널리 보급되어 있다. 침 놓는 것과 뜸뜨는 것은 구비하기가 쉬우면서도 그 효과는 매우 빠르기 때문이다. 이제 침구경험방이 나와서 증세에 따라 치료 하면 집집마다 신의 의술을 만날 수 있게 되어 그 구제하는 바를 헤아릴 수 없게 됐다. 침구경험방의 간행을 계기로 앞으로 침뜸 은 더욱 많이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 침과 뜸을 보다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제도적인 보완이 요구되고 있다. 이를 위해 국가기관으로 침의청(鍼醫廳)을 별도로 설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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