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허임기념사업회 20주년 공로상 감사장 봉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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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허임기념사업회 20주년 2025.12.29. 공로상 감사장 봉사상
[공로상] 하승수 변호사, 양만석 전 국립맹학교 교사, 김갑기 『가문의 침술』 저자, 홍성 우리마을뜸방(유승희 외), 스페인 침술협회(김국주 원장, 조도현 원장, 신현승 원장, 회장 송달용 원장) [감사장] 구당침뜸계승발전회(회장 구본원) [봉사상] 허임마을 침뜸봉사회, 정일교 미얀마 본부장, 손병덕 사할린 본부장, 뜸사랑 필리핀 봉사단(민종오/한순애 외), 모듬살이 건강 나눔터(김성용 외)
[공로상] 하승수 변호사,
1. 2001년 침뜸 평생교육기관 신고 반려에 대한 행정소송을 고등법원에 항고하고, 대법원에 상고까지 하여 2011년 7월 28일 마침내 승소 판결을 이끌어냄으로써 침뜸의 평생교육에 대한 법률적 지위를 지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2.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서 2017년 2월에 발생했던 홍성 우리마을뜸방에 대한 ‘함정 고발 사건’('품앗이 뜸' 관련 의료법 위반 사건)에서 이상훈 변호사, 송영섭 변호사와 함께 주민들 편 법률 대리를 맡아 1심과 항소심(2018년)에서 무죄 판결을 이끌어내어, 반미립대 직접뜸을 일반 대중에 널리 보급할 수 있는 법률적 지위를 지켜내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국민 침뜸 지킴이 변호사 -
[공로상] 양만석(전 국립맹학교 교사)

국립맹학교에서 평생을 침술 교사로 재직하시고 정년퇴직하신 양만석 선생님.
1944년생. 서울맹학교 사범과 졸업 후 이 학교 교사로 27년간 재직하며 안마, 마사지, 지압, 침 등 시각장애인의 이료(理療)교육에 전념해 왔다. 2007년 정년퇴임을 하고 다시 안마원 운영을 하면서 사회단체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복지 활동으로는 시각장애인 안마사 분회 법규부장, 사단법인 서울특별지안사회 총무, 맹인복지회 사무차장 등을 역임하였고, 침구사법 제도화를 위한 활동에도 적극 앞장서 왔으며, 강원도 강릉이나 전남의 해남 등 낙도 등지로 침술 봉사를 제자들과 함께 꾸준히 해 왔으며 봉사와 헌신을 실천하고 있다. 현재 종로 인명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표를 맡아 시각장애인 자립과 사회 참여를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이료(理療)는 안마와 같은 수기요법과 침술과 같은 자극요법으로 질병을 다스려(理) 고치는(療) 시술을 의미함.
[공로상] 김갑기(『가문의 침술』 저자)


1943년 전남 무안군 몽탄면 다산리 유학자 집안 출생. 1960년 조선대학교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침술 펼치던 부친이 “침구사가 되어 가업을 이어라”고 권유하여 서울로 유학, 1961년 관인 대한침구학원을 수료했다. 1962년 광주에서 부친을 도와 침술치료를 시작하면서 순창의 침구의원 최사문, 종조부 김예형으로부터 전통 침술을 체계적으로 전수받고, 인근 지방을 순회하며 침술을 했다. 1968년에는 대한침구학원동창회 전남지부 총무부장을 맡아 침구인 조직화에 힘쓰며, 침구사 제도 시행 활동에 참여했다. 1968년 전남 고흥 출신의 이정엽 여사와 결혼했다. 1969년에는 침구사 제도 시행이 지체되자 서울에서 사업을 하며, 침구학원동창회를 중심으로 하는 침구사 제도화 투쟁에 참여했다. 1972년부터 침구학원동창회(1973년 한국침술연합회로 개칭) 전남지회장을 맡아 침구사 제도화를 위한 활동에 참여했다. 1973년부터 지인과 한약방 공동경영을 하기도 했고, 1975년부터 광주에서 약사인 사촌 형제와 동생과 함께 10여년 간 약국을 경영하며. 부친의 침술원 일을 도왔다. 깁갑기 본인과 부친과 모친는 1960년대 중반부터 ‘무면허 침술’이라는 이유로 여러 차례 고발을 당했다. 1997년에는 벌금 300만원에 보호관찰 3년의 고초를 겪기도 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침구사 제도화를 위한 활동을 하며, 선대로부터 이어온 조선 전통 침구술의 맥을 잇는 일을 해나고 있다. 2024년부터는 사단법인 허임기념사업회에서 시작한 조선침뜸 전승세미나에 참여하여 임상교수로써 ‘가문의 침술’을 전승하는 교육에 매진하고 있다.
[공로상] 홍성 우리마을뜸방(유승희 외)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 위치하며, 주민들이 전통 민간요법인 뜸을 배우고 시술하며 건강을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자발적인 자연치유 공동체 모임 및 활동 공간이다.홍성 우리마을뜸방은 2017년 2월에 발생한 ‘함정 고발 사건’('품앗이 뜸' 관련 의료법 위반 사건)으로 뜸방이 법률적 처벌을 받을 위기에 처했으나 홍성의 작은 마을 주민들이 국민 전체의 뜸에 대한 권리를 지켜냈습니다. 한의사협회가 2016년부터 여러 침뜸단체에 침투시킨 프락치가 홍성 홍동의 우리마을 뜸방을 고발하면서 시작된 뜸방 재판이 항소심에서까지 무죄 판결을 받고, 2018년 최종 확정되었습니다. 한의사가 해도 위험하니까 한의사만 해야한다며 국민 모두의 뜸주권을 강탈하여 독점하려는 욕심에 맞서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지켜냈다. 이로써 한의사협회라는 이익집단으로부터 누구나 뜸(쌀알 반톨만한 작은 직접뜸)으로 스스로 건강관리를 할 수 있는 국민주권을 지켜내게 된 것이다. 이에 국민 모두가 이 마을에 감사를 표해야 할 것이다.
[공로상] 스페인 침구협회(김국주 원장, 조도현 원장, 신현승 원장, 회장 송달용 원장)

스페인에서 1970년대부터 침술원을 운영하며, 동양의 전통요법인 침구술이 알려지지 않았던 스페인에서 침구원을 열고 침구교육사업을 전개하도, 의사나 직장인, 그리고 침구원 운영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에게 침구학술을 가르쳐온 한국 침구사들의 단체가 스페인 침구협회다. 1992년 창설한 스페인 침구협회는 송달용 원장과 김국주 원장, 조도현 원장, 신현승 원장 등 여러 한국인 침구사들이 중심이 되어 스페인 내 침술 및 자연요법의 발전을 위해 활동하며, 정부의 자연요법 반대 법안 추진에 대응하는 등 현지 침구사들의 권익 보호 및 침구학술 연구와 보급에 힘쓰고 있는 전문 협회. 2025년 11월8일에는 바르셀로나에서 100여 명의 스페인과 한국의 침구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국제 한국 침구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스페인 침구협회의 중심적인 활동가>
회장 송달용 원장 : 침구사, 스페인 수지침 침구 학회(FEAAM) 회장, 바르셀로나에서 의사와 함께 병원을 개설하여 침술원 운영하며 한국 침술학교를 만들어 교장으로 침술료육에도 매진하고 있다.
신현승 원장: 침구사, 스페인 카나리에 제도 떼레네페에서 침술원 운영 및 침구학술 교육. 카나리제도 태권도 연맹 및 스페인 태권도 연맹 회원.
김국주 원장 : 침구사. 스페인에서 침술원 운영 및 침구학술 교육.
스페인 수지침 침구 학회 명예 회원 바스크 지역 수지침 및 침구학회 (AMAE) 전 회장 역임. ‘12경락의 품새’ 책 공동 저자
조도형 원장 : 침구사, 스페인에서 40여년 침술원 운영 킬 침술 교육.
[감사장] 구당침뜸계승발전회(회장 구본원, 수석부회장 강진규)

구당침뜸계승발전회는 침뜸 명인 구당 김남수 선생의 침뜸 의학 사상과 전통 침뜸 기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구당침뜸계승발전회는 구당 김남수 선생의 수십년 뜸사랑 봉사단 활동을 이어받아, 한국정통침구학회(회장 김현성) '뜸사랑 구당침뜸 평생교육원' 등과 연계하여 무료 침뜸봉사활동을 계속하며, 제주 대구 대전 광주 부산 서울 등지 뜸사랑 각 봉사실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각 지역의 봉사실에서 활동하는 침뜸 봉사활동가 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봉사상] 뜸사랑 필리핀 봉사단(민종오/한순애 외)

2016년부터 2025년까지 거의 매년 한국의 뜸사랑 봉사활동가들이 필리핀을 방문하여 현지에서 침술원을 개설하여 침구의사로 활동하는 민종오 원장과 함께 여러 곳에서 봉사활동을 해 왔습니다.
2016년 설날 2월10일 필리핀 엥헬레스 시청에서 시행된 구당 김남수 선생님과 함께하는 의료봉사활동, 2018년 11월 9일에 필리핀의사협회와 공동으로 개최한 뜸사랑 해외봉사단의 의료봉사활동을 필리핀방송국 GNN에서 방송하기도 했습니다.
[봉사상] 허임마을 침뜸봉사회(회장 민병수)

조선시대 대표 침구사인 허임 선생의 침구경험방 집필지에서 지역 주민을 위한 침뜸 봉사활동을 2014년부터 계속해 왔고, 2020년부터는 지역 봉사자들이 기금을 모아 봉사활동 공간을 유지하며 침구 역사 인물의 유허지에서 침뜸 연구와 봉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봉사상] 손병덕 사할린 한인회 초대 회장

충남 태안군 남면에서 1945년 3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서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후 형을 따라 부산, 목포, 인천 등을 다니며 수산물 수출 사업을 했다. 1980년부터 인천에서 살면서 우연한 기회에 수지침을 배웠고, 1987년에는 전통 침술을 당시 내과 의사였던 최형배 선생에게서 전수 받았다.1993년 사업차 러시아 하바롭스크에 가게 되고, 이듬해 다시 사할린에 갔다가 사업이 실패하여 발이 묶였다. 통역을 도와주던 교포의 두통을 치료한 것이 계기가 되어 사할린에서 침뜸 무료시술을 시작하게 되었다.
1997년 사할린(유즈노사할린스크시 노뜨로이스크)에서 농장을 운영하며 배추와 토마토 등 채소 농사를 시작했다. 한국의 고랭지 배추종자로 사할린에서 배추농사에 성공한 그는 그곳 러시아인에게 김치 담그는 법을 전파하는데도 한 몫을 했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침뜸 무료봉사를 계속하여 통풍, 디스크, 두통, 당료, 암에 이르기까지 각종 질환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그는 특히 소금뜸과 마늘뜸 등의 간접구도 적절히 활용하여 난치병 치료에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다.
2007년부터는 현지 한국 기업인들과 함께 아리랑장학회를 만들어 회장으로 활동하며 한국어교육을 지원하고 장학생을 선발하여 국내 대학에 연수를 보내는 등 다양한 후원 사업도 한다.그는 침뜸이 질병의 치료와 예방에 효과가 좋은 전통 민간의술이라며 현대의학과 협력하여 난치병 치료에 적극 활용되길 바라고 있다.
[봉사상] 정일교 미얀마 본부장

1941년 강원도 동해에서 8남매의 맏이로 태어났다. 가난 탓에 어려서부터 구두닦이, 아이스케이크 장사,제빵기술자, 벌목꾼, 탄광의 막장 광부, 파독 광부 등 세상의 밑바닥을 두루 거쳤다. 그야말로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거듭하던 그는 2005년 부인과 사별 후 사업도 정리했다. 그 후 봉사의 삶을 살기 위해 67세에 침구술을 배워 인생 2막을 시작했다. 2013년부터 미얀마 남부 오지에서 농장개발 책임자로 근무하며 침술로 봉사하다 2015년부터는 양곤 인근 딸린시 따바와명상센터에서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무료 침뜸봉사를 이어갔다. 그곳에서 2023년까지 간호보조원과 미얀마 전통의사 등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게 침뜸교육도 병행했다. 2024년에는 인도 상카시아에서 3개월 동안 침뜸무료 봉사활동을 하고 지역 의사들에게 침뜸을 가르쳤다. 2025년에는 동북아평화연대의 협조를 받아 러시아 연해주에서 2개월 동안 봉사를 다녀왔다.
[봉사상] 모듬살이 건강 나눔터(최장기 봉사 김성용 외)

2004년부터 개인과 단체, 기업이 모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장점과 기반을 서로 나누고 공유하여,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활동하여 왔습니다. 급속하게 고령화되어 가는 우리사회에서 물질적, 육체적,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을 위하여 생활물품지원, 건강돌봄, 사회적 소통을 통해 우리 사회를 좀 더 따뜻하고 살 맛 나는 세상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그동안 서울모범운전자회와 함께 '사랑의 쌀 나눔'을 통해 매월 1000여 가정에 쌀을 나누는 활동을 했고, 도시교통시민연대와 함께 '밥사랑 무료 급식소'를 통해 어르신께 따뜻한 점심을 나누었고, 침뜸단체와 함께 '침뜸봉사'를 통해 어르신들의 건강을 살피는 활동을 진행해왔습니다.
한의사협회의 반복되는 고발에도 침뜸 봉사자들과 함께 국가의 침구 정책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사법적 대을을 하기도 하고 헌법소원도 제기하며 봉사활동을 이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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